앎과 정확한 앎에 대한 목마름이 다 타버릴 것이다

앎은 그 자체로서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한 지도를 갖는 것과 같을 뿐

그대가 보물을 발견하면, 지도를 내던질 수 있다, 기념품으로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앎을 숭배하지 마라, 앎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존재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 다음 존재 또한 바라본다, 이것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이다

 


 

 

every desire you have is a prayer

now you direct the prayer to supreme, be conscious of what you seek

for me, i say, of preayers, the highest is to hand yourself over

stop belonging to you

 

그대가 갖는 모든 열망은 기도다

이제 그 기도를 최상으로, 

그대가 찾는 것을 의식해라

나에게는, 기도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은 그대 자신을 건네는 것이다

그대에게 속하기를 그만둬라

 

this is surrender to say, 'i don't know even how to do'

 

'난 어떻게 하는지조차 모른다'라 하는 것, 이것은 내맡김이다

 

resistance is only because of identity

and we are strong association with the mind born identity,

it is flavor of resistance

but the witness of resistance is not resistance

go all the way

the witness of identity is the witness of everything else also

 

저항은 동일시 때문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에서 생겨난 동일시와의 강한 결합이다

그것이 저항의 냄새다

하지만 저항을 바라보는 자는 저항이 아니다

끝까지 가라

동일시를 바라보는 것은 그 밖에 모든 것 또한 바라본다

 

don't identify as the person, he witnesses also the person

and all that comes with the personhood is there before you

but only because of momentum or the force of habit, we keep picking up identity of the person

but you're not this person

but because of somehow the history of person, all the language of duality,

the reflex is to being person

but now you have come to the place where the capacity to witness the state of person

 

제한된 인식으로서 동일시하지 마라

제한된 인식 또한 바라본다

그래서 제한된 인식과 같이 오는 모든 것이 그대 앞에 있다

하지만 습관의 충동이나 힘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제한된 인식의 동일시를 집어든다

하지만 그대는 이 제한된 인식이 아니다

 

어떻든 제한된 인식의 역사, 이원성의 모든 언어 때문에

습성이 제한된 인식으로 간다

하지만 이제 그대는 제한된 인식의 상태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이르렀다

 

and also to be witness the function of witnessing

very subtle

so i don't say, take up this practice and throw away the other practice

no, pray, pray to god

gradually you become fit for inquiry

because the person is a phenomenon in duality

 

바라봄의 기능 또한 바라본다

아주 미묘하다

그래서 나는 이 연습을 선택하고, 다른 연습을 내던져라 라 하지 않는다

아니다, 기도해라, 신에게 기도해라

점차 그대는 탐구에 들어맞게 된다

제한된 인식은 이원성에서의 현상이므로

 

what is the highest relationship with duality?

there must be relationship with god

when you discover the relationship with god like this, then he also take you to this, non-dual understanding

so you stop projecting onto god some human characteristics, because he's beyond this also

then you go beyond the human characteristics also

then you're fit for inquiry or this contemplation that you are doing now

 

이원성과의 가장 높은 관계는 무엇인가

신과의 관계

그대가 이런 식으로 신과의 관계를 발견할 때,

그러면 그가 또한 그대를 이것으로, 비원적 이해로 데려온다

그대는 신에게 인간의 특성들을 투사하는 것을 그만둔다, 그는 이 또한 벗어나 있으므로

그러면 그대 또한 인간의 특성들을 벗어나 간다

그러면 그대는 지금 하고 있는 탐구나 이 숙고에 들어맞는다

 

then the thirst for knowledge and correct knowledge will burned off

because knowledge is something as an end itself, it's like to just have a right map

when you find a treasure, you can throw the map away, you can keep it a souvenir

don't worship knowledge, knowledge is important, but it must combust into beingness

then the witness to beingness also, this is the unnameable one

 

그러면 앎과 정확한 앎에 대한 목마름이 다 타버릴 것이다

앎은 그 자체로서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한 지도를 갖는 것과 같을 뿐

그대가 보물을 발견하면, 지도를 내던질 수 있다, 기념품으로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앎을 숭배하지 마라, 앎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존재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 다음 존재 또한 바라본다, 이것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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