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자가 보이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보는 자 또한 시간 안에 있다
보는 자가 인식의 대상에 관심이 있다면, 그 자신 안에서도 그 특질을 같이 갖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해되면, 그대는 보는 자가 완결한 보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여전히 어떻게든 동일시와 섞여있다
그렇게 동일시와 섞여 있다면, 그것 또한 어느 정도 현상적이다
you'll find what i'm pointing to is sublimely simple
because is already in place
but disbelief inside the mind does not accept the complete recognition of that, trust in that.
so this is wha say, as we are immersed in the energy field of satsang,
you find somehow, you're coming back to your natural mind, your natural way of seeing and the lightness of that,
the purity, the immediacy of it,
not building up now new religious or spritual conditioning
because the truth is without conditioning,
it's pure,
i want to show this in yourself,
and the sooner the better.
그대는 내가 가리키고 있는 것이 지극히 단순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미 자리잡고 있는 것이므로
하지만 마음의 불신은 그것의 완벽한 이해를, 그것 안에 있는 신뢰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래서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트상의 에너지 장에 잠겨들수록
그대의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보는 방식으로, 그 가벼움, 순수함, 즉각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발견한다
새로운 종교적, 영혼 관련 조건화를 만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리는 조건화가 없다
순수하다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이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빠를수록 좋다
you say, 'i'm looking, see the thoughts, so i understand intellectually.
i see that thoughts are perceived'.
그대는, '나는 본다, 생각들을 바라본다, 지적으로는 이해한다, 생각이 인지되는 것을 본다' 라고 말한다
that is already some space.
if they can be sseen, is the seer and the seen the same thing?
because what is seen is in time, arises, subsides,
it comes and goes, appears, disappears, that is witnessed
but what about that which sees it?
the thoughts, they come and go.
does seer of that, the perceiver of them come and go?
그것에 이미 공간이 있다
보일 수 있다면, 보는 자는 보이는 것과 같은 것인가
왜냐면 보이는 것은 시간 안에 있고,
떠오르고 가라앉는다
오고 간다,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것이 목격된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자는 어떤가
생각들은 오고 간다
그것을 보는 자, 인식하는 자는 오고 가는가
now as we go more intricately with it,
if i said to you also, if the seer is interested in what is seen, the seer is also in time.
if the seer is interested in the objects of perception,
then it's having some of that quality inside himself, also
and if that is understood, you'll see that that seer is not complete seer.
it is still somehow mixed with identity
and so if it's mixed with identity, it is also phenomenal to some extent.
if you understand this, that a deepr space of being opens up behind
and you realize this one is iimpersonal.
이제 우리는 점점 더 미묘하게 들어간다
보는 자가 보이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보는 자 또한 시간 안에 있다
보는 자가 인식의 대상에 관심이 있다면, 그 자신 안에서도 그 특질을 같이 갖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해되면, 그대는 보는 자가 완결한 보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여전히 어떻게든 동일시와 섞여있다
그렇게 동일시와 섞여 있다면, 그것 또한 어느 정도 현상적이다
그대가 이것을 이해한다면, 존재의 보다 깊은 공간이 뒤에서 열린다
그리고 이것은 person (제한된 인식) 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
when we are seeing impersonally,
then there is no action of seeing so much,
it's not like you're looking, is not looking,
is not interested in fact.
it's like somehow perceiving of life of outer and inner functioning is taking place spontaneously
to that which cannot be described.
you're going to notice this
because what i'm talking about is nothing future about it.
it is already so
but because we are presently engage with the mind, the psychological mind and identity which is always fluctuating, always moving,
then you believe you're that.
you cannot experience the stability.
우리가 person 이 아닌 자리에서 바라볼 때,
본다는 행위는 그닥 없다
그대가 본다, 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사실 관심이 없다
어떻든 외부에서 내면에서 작용하는 삶의 인식이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것 같다
그건 설명될 수 없는 정도의 것
이것을 그대가 알아차릴 것이다
왜냐면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미래의 것이 아니므로
이미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항상 움직이는, 항상 변하는, 마음, 심리적 마음, 동일시에 몰두해 있으므로,
그대가 그것이라 믿는다
안정성을 경험할 수 없다
when you come to see that the movement of mind and body and time and so on are by nature,
their movements in consciousness, but they're witnessed and the witness is not moving,
then already, in the immediacy of the seeing, you're experiencing already some space and peace
and wonderful sense of discovery
마음과 몸, 시간 등의 움직임, 의식 안에서 그것들의 움직임을 본성대로 그대가 볼 때,
그것들은 목격된다, 그리고 목격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면 벌써, 바라봄의 즉각성으로, 어떤 공간과 평화, 놀라운 발견을 했다는 느낌을 그대가 경험한다
'Mooji'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도 환영을 가치있게 여겨서는 안 된다 (0) | 2018.03.18 |
---|---|
보다는 관찰하고 명확히 해라 (0) | 2018.03.17 |
분열이 있다. 나는 그게 완벽히 괜찮다 라 말할 수 없다 (0) | 2018.03.15 |
어느 지점에 이르면, 그대의 자신에 대한 느낌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0) | 2018.03.14 |
아마 판단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어떤 식으로든 인식된다 (0) | 2018.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