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태도는 좋다, 태도는, 나는 여기에 있다, 이것을 위해 내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어떻든 그대가 사트상에 앉아 있으면,

정말로 지침을 따라, 그대의 존재로 더 들어서다보면,

작은 그렘린이 뛰어다니는 것을 보기 시작한다

작은 것들의 튀어 나온다

그대는 '전혀 내맡기고 있지 않았군' 이라고 한다






it is a thought also that is mixed with a certain depth or strength of identity is still there,

and that portion of identity is somehow preventing that pure space of contentment or confirmation.

something feels like it's still there.

it's like still some.

someone use the word, a bit of splinter, i like that expression


생각 또한 동일시의 깊이나 강도와 섞여 아직 거기에 있다

그리고 그 동일시 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순수한 만족이나 확인의 공간을 막고 있다

무언가 아직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아직 좀


누군가, 갈라져 있다, 란 단어를 사용했다

그 표현이 좋다


some splinter is there

i can't say it is perfectly fine.


분열이 있다

나는 그게 완벽히 괜찮다 라 말할 수 없다


we're coming into very subtle ground

and this subtlety is very important that we are, we take time and to be clear about it,

because we are not talking about objects, now.

we're not describing objects.

these are very subtle, but when we speak about mind or consciousness or presence,

we don't have something to say, 'ok, it looks like this and that.'

so the mind and the attention has been thrown insdie into the realm of the intuitive senses,

is not just with the brain.

you're sensing what is there,

because mind does not have a shape,

mind takes the shape of whatever concepts you're using

and then when it moves to another shape, the all shape is gone or stored somewhere.


우린 아주 미묘한 지점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리고 이 미묘함은 아주 중요하다

우리가 시간을 들여 명확해져야 한다

우리는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물건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미묘한 것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이나 의식, 존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래, 그건 이처럼 그리고 저렇게 생겼어' 라고 말할 것이 없다

그러니 마음과 주의는 직관의 영역으로 내던져진다

단지 뇌 관련이 아니다

그대는 그 곳에 있는 것을 느낀다

마음은 모양을 갖지 않는다

마음은 그대가 사용하는 개념이 무엇이든, 그것의 모양을 취한다

그리고 다른 형태로 움직여가면, 이전의 모양이 모두 사라지거나 어딘가에 저장된다



so we're cooming down to more subtle understanding.


우리는 보다 미묘한 이해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so you say, 'i see thought, i can observe thoughts, but still somehow it doesn't seem enough,

there seems like also the sense of surrender, how do i know if i cmopletely surrender?'


그대는 말한다

'난 생각을 본다,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걸로 충분치 않은 것 같다,

내맡김의 느낌도 있는 것 같다,

내가 완전히 내맡긴다는 걸 어떻게 아는가'


well, actually this is not an easy thing

because there's no percentage.

you say, ' i want to surrender 100 %'

i said, the attitude is good, but don't rely on the mathmatics


사실 이건 쉬운 것이 아니다

비율이란 없기 때문에,

그대는, '나는 100%로 내맡기길 원한다' 라고 한다

나는, 태도는 좋다, 하지만 수학에 기대지 마라, 라고 말하겠다


how're you going to measure 100% internally, you don't,

you can only feel,

i do surrender but sometimes i realize i'm not quite surrendered, actually.


그대가 어떻게 내적으로 100%를 측정하겠는가

못한다

'나는 맡긴다, 하지만 사실은 상당히 내맡기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한다' 라고 느낄 수 있을 뿐이다


so attitude is good, attitude is i'm here, i'm here for this

but then somehow as you sit in satsang,

as you really allow the guidance to really enter into your being more,

you start to find a little gremlin jumping out, little things coming out.

you say, while i was surrendered at all.


그러니 태도는 좋다, 태도는, 나는 여기에 있다, 이것을 위해 내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어떻든 그대가 사트상에 앉아 있으면,

정말로 지침을 따라, 그대의 존재로 더 들어서다보면,

작은 그렘린이 뛰어다니는 것을 보기 시작한다

작은 것들의 튀어 나온다

그대는 '전혀 내맡기고 있지 않았군' 이라고 한다


so surrender, you cannot do completely

Grace is acting through this body and coming the surrender to completion, like that.


그러니 내맡김은, 그대가 완벽히 할 수 없다

은총이 이 몸을 통해 완결을 가져온다

그런 식이다


so that attitude is good, the mathmatics is not needed about it.


태도는 좋다, 그것에 관한 수학은 필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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