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erson itself is realized to be kind of made up or sustained by the lack of looking,
perpetuate the identity
already even short time,
presence, but detachment from the person
because we realize how cosstly, it's the highest tax you're carrying, is a state of personhood
the restlessness, insecurity, hypocrisy, weakness
when it becomes watchable, it tames it
if it's watchable without identifying with it, it cools down completely in the face of presence
and you realize, i'm here
here i am, there i'm becoming
제한된 인식은
바라봄의 부족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지지받거나 하는 것으로 알아차려진다,
바라봄의 부족이 동일시를 계속 가게 한다
(바라봄의) 이미 짧은 시간으로도,
현존이다, 하지만 제한된 인식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왜냐하면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루는지 알게 된다,
그대가 지고 다니는 가장 높은 세금이 제한된 인식의 상태다
불안, 불안정, 위선, 나약함
그것이 바라보아질 수 있을 때, 그것이 그것을 길들인다
그것이 동일시 없이 바라보아질 수 있다면, 그것은 현존 앞에서 완전히 진정된다
그리고 그대는, '나는 여기에 있다'라 알아차린다
여기에 내가 있다, 저기에서 나는 되어 간다
and that stillness is the most important discovery for any human being who have the urge to discover god, truth, themselves
it's the most practical, direct, uncomplicated, accessible, but just overlooked
그리고 그 고요함은 신, 진리, 그들 자신을 발견하려는 열망을 가진 어느 인간 존재에게도
가장 중요한 발견이다
가장 실용적이고 직접적이고 복잡하지 않고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간과된다
actually during the discovering stage of it, like you say, 'i can see the emptiness'
but in your perceiving the emptiness, from emptiness, as emptiness,
emptiness is not an object of perception
even space becomes a subtle kind of objection
but emptiness is already here
발견하는 단계 동안 그대는, '나는 비어있음을 볼 수 있다'의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그대가 비어있음을 인식하는데서, 비어있음에서, 비어있음으로서다
비어있음은 인식의 대상이 아니다
공간조차 미묘한 대상과 같은 것이 된다
하지만 비어있음은 이미 여기에 있다
the one who practices this is just on the bridge between person and the truth
it's still, what i call the satoric person, which means, there's still some sense by individual person self there,
but it's attacted to god, truth, ego is attracted to truth
but it can still drop back in the ego
이것을 연습하는 자는, 제한된 인식과 진리 사이의 다리에 있다
내가, 깨어난 제한된 인식이라 부르는 그것은,
아직 개인적인 제한된 인식에 의한 느낌이 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신, 진리에 끌린다, 에고가 진리에 끌린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에고로 되떨어질 수 있다
so this one, as it is somehow merging in its emptiness,
because it doesn't have another way of perceiving other than this dualistic language,
so it may even say, 'i can see the emptiness, i can see the self'
you cannot see the self
you're the self seeing
but this language is not familiar
and actually in our daily existence, wherever we are in the world, we've not encountered for this way of speaking this
our speaking is primarily in the domain of duality, subjecti-object
그래서 이 자가 어떻게 해서인가 그 자신의 비어있음에 합쳐질수록
그것은 이원적 언어 외 다르게 인식하는 방법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비어있음을 볼 수 있다, 자신 을 볼 수 있다'라고 까지 말할 수 있다
그대는 자신 을 볼 수 없다
그대가 자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 언어는 익숙하지 않다
그리고 사실 우리 매일의 존재에서, 우리가 세상 어디에 있든,
이런 식으로 말하는 방식으로 만나지 못한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주로 이원성, 주체-객체의 영역에서다
so when we say, we're seeing this, you're seeing even seeing
we're perceiving perceiving, act of perceiving also inside this
even as a subtle movement
so at this point, when i say, can you bear emptiness?
there's sense of, like something is carrying this contemplation out,
it's bearing witness to it
it's feeling energetically the fruit of it
우리가 이것을 바라본다 라 할 때, 그대는 바라봄조차 바라본다
인식을 인식한다, 인식의 움직임 또한 이 안에서다
미묘한 움직임이라도
그래서 이 지점에서 내가, 그대는 비어있음을 견딜 수 있을까 라 할 때
무언가가 이 숙고를 하는 느낌이 있다
그것이 그것을 바라본다
그것이 그 결실을 에너지상 느낀다
and sometimes when i say, can you bear emptiness?
because in the human form, we cannot bear emptiness
the reflex to ignite to contact to jump into the next thing, the next thing
that's why i say,
when the mind come, it's looking for food, contact
and the food contact for the mind is identity
내가, 그대는 비어있음을 견딜 수 있는가 라 할 때
왜냐하면 인간 형상으로 우리는 비어있음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 것, 다음 것으로 뛰어들려는 닿으려는 습성이
그래서 내가 말하는 것이다
마음이 나타날 때, 그것은 양분, 접촉을 찾는다
그리고 마음의 양분 접촉은 동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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