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put you to position to try and control the mind, the mind and the one who suffers it

i say, step back one more here

and then that show is watched, and becomes clear, i is still here, but not as a person

it's very different

because in the place, even i call it witness, is something even subtler than witness

witnessing is still activity

from the witnessing to point to point, it becomes like kind of panoramic witnessing,

which means, whatever happens through senses, you don't have to look to them,

they feed into the conscious self, there's awareness of them

but the awareness is not looking for guidance or direction from them

it's just like everything is registered in the consciousnesss

 

나는 그대를 마음을 통제하려 하는 위치에 두지 않는다,

마음과 그것으로 고통을 겪는 자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라, 여기로 라 말한다

그러면 그 쇼가 바라보아진다, 그리고 분명해지게 된다,

나 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하지만 제한된 인식으로서가 아니다

그것은 아주 다르다

 

내가 바라봄 이라 하는 자리에는, 바라봄보다 훨씬 미묘한 무언가가 있다

바라봄은 여전히 활동이다

지점에서 지점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전체적인 바라봄과 같은 것이 된다

감각을 통해 무엇이 일어나든, 그대는 그것을 볼 필요 없다

그것들이 의식에 비추어진다, 그것들에 대한 각성이 있다

 

하지만 각성은 그것들로부터의 안내나 방향을 구하지 않는다

그냥 모든 것이 의식에 기록되는 것 같다

 

after you're sitting in contemplation for a while,

something becomes like 'i need to do something'

that's what about bearing the emptiness

 

그대가 잠시 동안 숙고하며 앉은 이후,

무언가가 '나는 뭔가 해야 해'의 식이 된다

그것이 비어있음을 견디는 것에 대한 것이다

 

now it's not that activity intimidates the silence

but what happen is that as you become more grounded in it, 

meaning that we become more grounded in it until at some point there is no we to become grounded in it,

just is

so it does not fluctuate

that it doesn't matter how the world behave, even if some sense of person can come

but it's like writing on water, it doesn't leave any impressions in that

 

활동이 침묵을 방해한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일어나는 것은,

그대가 그것에 더 자리잡을수록,

우리가 그것에 더 자리잡을수록, 어느 지점에서, 그것에 자리잡는 우리가 없다

그냥 있다

그것은 변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상관없다, 제한된 인식의 느낌이 나타날 지라도

물 위에 글을 쓰는 것과 같다, 그것에 어떤 인상도 남기지 않는다

 

as soon as you realize your true nature, this body still has to do what has to do

but the victim is out of it

because the victim was the personal self

but it's a gradual ripening happen

 

그대의 진짜 본성을 알아차릴 때

이 몸은 여전히 해야 하는 것을 해야 한다

하지만 희생자는 빠져 나갔다

희생자는 제한된 인식의 자신이었으므로

 

하지만 점진적으로 익어간다

 

step by step

3 step down the road from this one, no, forget about that

because in reality, there's no steps

but in the experiencing of moving away from what is false,

that seems like there is sequential in the stages

but in the space, no

 

차근차근

 

이것에서 3단계 길을 따라 내려가라, 아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는 잊어라

왜냐하면 실재에서 단계는 없다

하지만 경험에서, 가짜인 것에서 벗어나는 경험에서는

단계에서 순차적인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공간에서는 아니다

 

it is so sutble so even emptiness is perceived

so we're simply coming back to our awareness, but it's like not a duality,

it's not one thing recognizing another thing

this is why i say, you cannot experiernce yourself

experiencing something always seems to be experiencing other

but experiencing yourself, it sounds strange what i'm saying, you cannot experirence yourself, you are the self

you are the self experiencing the self

 

그것은 아주 미묘해서, 비어있음조차 인식된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자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원성과 같지는 않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인지하는 것이 아니다

 

이래서 말하는 것이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경험할 수 없다고

무언가를 경험한다는 것은 항상 다른 것을 경험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대 자신을 경험한다는 것은, 

내가 말하는 것은 이상하게 들린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경험할 수 없다,

그대가 자신 이다

그대가 자신으로 자신 을 경험한다

 

even if there's nothing to experience, what remains here is pure joy

the world joy is not enough

and this is what people have tasted, 'oh this is not the joy of the world, this is the joy of the self, god'

god doesn't enjoy coffee--

but the joy that it comes out of is incomprehensive

that joy is possible inside the what we call the human being, actually is only temporary form of god expressions

 

경험할 것이 없다 해도, 여기에 남아 있는 것은 순수한 기쁨이다

세상의 기쁨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이것이 사람들이 맛봐온 것이다, '와 이것은 세상의 기쁨이 아니다, 자신, 신의 기쁨이다'

신은 커피를 즐긴다--의 식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에서 나오는 기쁨은 헤아릴 수 없다

 

그 기쁨이 가능하다, 우리가 인간 존재라 하는 것 안에서,

사실 인간 존재란 신 표현의 일시적 형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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