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제한을 그대가 느끼기 시작해야 한다

그 다음 그것이 그대에게 이러한 것을 넘어서고 싶다는 열망을 준다

본래 그대인 것이 아니다, 제한된 인식은

 

그대는 이 존재의 장에 제한된 인식으로서가 아니라 의식으로 들어왔다

그 다음 어떻든 무언가 생각으로, 제한된 인식에의 동일시, 믿음으로 변했다

이것에서 우리가 깨어나야 하는 것이다


 

 

 

 

it's habit, we're looking,

you feel, yes, just i'm experiencing this vastness, 

-where's the end of vastness?

oh, i'ts unending,

but did you travel aound to look out the ending it is?

no, right where you are, you know and even without thinking about it,

something is so immeidate in you,

that is not the product of some thought or some figuring out

 

습관이다, 

 

우리가 바라본다,

그대는, '그래, 나는 단지 이 광대함을 느낀다' 라고 느껴진다

 

-광대함의 끝은 어디인가

아, 그 끝은 없다

 

-하지만 그대가 돌아다니며 그 끝을 찾아 보는가

 

아니다, 바로 그대가 있는 곳에서, 그대가 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도

무언가 그대 안에서 즉각적이다

그건 생각이나 알아내려 한 결과가 아니다

 

in the 'Invitation' for many people,

they're responding somehow with responses that -many scientists can't understnad,

research of the research, all kkinds of-, get one second

and housewife who's- busy cooking and cleaning everyday, get answer like this 후-

 

'invitation' 에서 많은 이들이,

어떻든 응답을 한다, -무수한 과학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도, 온갖 것들을

한 번에 이해한다

매일 음식을 하고, 청소를 하느라 바쁜 주부가, 후- 하는 식으로 한번에 답을 얻는다

 

so is it imagination?

how can someone who has certain proportion and feel i'm just here, but i see all this, i know all of this,

then this vastness comes to you from somewhere?

are you inside the vastness? or is vastness inside you?

it is not also scientific measurement, is very much intuitive also-

it's direct knowing, so don't worry, if you say, 'i can't verify that it is like that',

 

그건 상상인가

어떻게 어떤 특정 부분을 가진 누군가가,

나는 그저 여기에 있지만 이 모든 것을 바라본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안다, 고 느끼는가,

 

그러면 이 광대함은 그대에게 어디로부터 오는가

그대는 광대함 안에 있는가 아니면 광대함이 그대 안에 있는가

이것 또한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주 직관적인 것이다

바로 아는 것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그대가, '나는 그렇다는 것을 내가 입증할 수 없다' 라고 한다면

 

the point is that you feel that you are small thing inside the immense thing, is that what you're saying?

who is the one that knows?

who is the one that perceives small and big?

we're in some way feeling trapped by our cultural knowing, 

what you believe, habit of thinking and so on,

feels, 'yes, it cannot be, it's unreasonable that you can comment on the immensity of what is,

how can you say that it was not born?

i mean were you there to know?

i dare to know, somehow know,

 

그대는 광대한 것 안의 작은 것이라 느껴진다, 고 한다, 이것이 그대가 말하는 것인가

 

그렇게 아는 자는 누구인가

작은 것과 큰 것을 아는 자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느 정도 우리 문화가 아는 식에 의해 갇혀서 느낀다

그대가 믿는 것, 생각하는 습관 등,

 

'그래, 그럴 수가 없다, 그대가 '있는 것' 의 광대함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무리다'

 

어떻게 그대가, 그것 (그저 있는 것) 이 태어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는가 ('invitation' 에서의 질문)

내 말은, 그대가 그 곳에 있어 아는가

 

나는 감히 안다, 어떻든 안다

 

so what is really the tourble here?

that feels as though i'm still something knowing something,

but the sense of being something knowing something,

is not the one also the little something known that big thing also known?

-yes,

but by what?

what perceives small and big?

where is the location of that which is able to perceive inside and outside simultaneously?

-big one,

and you know which one?

-both of them

 

그래서 여기에서 정말 문제인 것은?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아는 무언가로 느껴진다

 

하지만 무언가를 아는 무언가인 느낌은 또한

알려진 큰 것을 아는 알려진 작은 것 아닌가

-그렇다

하지만 무엇에 의해서?

무엇이 작고 큼을 인식하는가

안과 밖을 동시에 인식할 수 있는 그것의 위치는 어디인가

-큰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어느 것?

-둘 다

 

and that is true, in fact,

you are the emptiness and the somethingness,

but the somethingness is, your portrait of yourself as time and form and change,

and that is unstable, that is always the dance of existence, being watched

somehow from the infiniteness of yourself,

not either or, both in fact,

you're absolutely absolute in fact,

there's no proof that you can give to anybody, you need not  to do it,

but something is beginning to confirm and feels ok in this,

yes, behind the scenes-

there is a silence and immeasurable silence, that is not touched by all these traffic of sensations, thoughts, feelings,

and all of this and they seem to be simultaneous,

and at the same time, if you don't recognize the immensity of the silence,

that that is the silence moving about?

is it a great space running about busy?

no, when you discover this, not merely as an idea,

it just feels it's just irreputable fact for you,

then in this world of dynamic activities, you find yourself also present

 

그건 사실이다

그대는 비어있음과 무언가임 이다

하지만 무언가임 은, 그대의 시간으로서 형상으로서의 자기 이미지와 변화 이고

그것은 불안정하다

항상 춤이다, 존재의

어떻든 그대 자신의 무한함에서 바라보아진다

 

어느 쪽인 것이 아니라, 사실 둘 다이다

그대는 절대적으로 절대이다 

 

그대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증거는 없다, 그대가 그렇게 해야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무언가 확인하기 시작하고, 이것 안에서 괜찮은 느낌이다

 

그래, 장면들 뒤에-

 

침묵이 있다, 측정할 수 없는 침묵,

 

이런 온갖 감각, 생각, 느낌, 이 모든 것에 의해 닿지 않는다

동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대가 침묵의 광대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침묵인가

바삐 다니는 위대한 공간인가

아니다, 그대가 이것을 발견할 때

단순히 생각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그대에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으로

 

그러면 이 역동적인 움직임의 세상에서, 그대는 그대 자신 또한 존재함을 발견한다

 

with this body- because the body is here, doesn't mean, it's an ego living in it

the body was not made for ego,

in this body resides the i am-ness that conscious presence that is witnessing everything,

but an extension of the self, when the belief that i am this body creates the sense of secondary entity,

what we're calling the person,

and is in the mode of personhood that nearly everyone is living,

not yet in the i am

 

이 몸을 갖고-

 

몸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에고가 그 안에 산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몸은 에고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 몸 안에는 내가 있다,

모든 것을 바라보는 의식적인 존재가

 

하지만 self 의 확장이, 나는 이 몸이다 라고 믿어질 때

부가적인 존재의 느낌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제한된 인식이라 하는 것이

모두가 살고 있는 제한된 인식의 모습이다

 

내가 있다 에서가 아니라

 

i want to tell you something, share something,

(Ramana Maharshi's 'i removes the i but remains the i')

-

so the i am, the natural sense in you, i,

which quickly get converted into person by habit and culture,

it says that i am removes the i-me person,

it transcends it through understanding or devotion or surrender or whatever,

once it removes- personal belief, delusion,

it again abides in its natural state i am,

then life is beautiful, the real landlord of the house is here

 

내가 그대들에게 나누고 싶은 것

(라마나 마하리쉬 의 '나 는 나를 제거한다, 하지만 나는 남아있다')

-

내가 있다, 자연스러운 그대 안의 나 의 느낌이

슴관과 문화에 의해 재빨리 제한된 인식으로 전환된다

 

내가 있다 는 것이 제한된 인식의 나, 나한테.....를 제거한다고 한다

이해나 헌신, 내맡김, 무엇이건 그것을 통해 변형시키는 것이다

 

일단 제한된 인식의 믿음, 환영을 제거하면,

다시 자연스러운 상태인 내가 있다 를 따른다

그러면 삶은 아름답다, 집의 진짜 주인이 여기에 있다

 

i-me.........this one has been transcended-

it is also shaped by consciousness, but it's much lower and restricted form of conscousness,

that resttriction you have to start to feel it,

then it gives to the yearning to go beyond this-

it is not original to you, personhood,

you did not come into this field of this existence as a person but as consciousness

and then somehow something got confront changed into the idea, identity of a person, a belief,

that we must wake out of that

 

나, 나한테...........의 제한된 인식의 이 자가 변형된다

이것 또한 의식에 의한 모양이다, 하지만 훨씬 낮고 제한된 의식의 모습이다

 

그 제한을 그대가 느끼기 시작해야 한다

그 다음 그것이 그대에게 이러한 것을 넘어서고 싶다는 열망을 준다

본래 그대인 것이 아니다, 제한된 인식은

그대는 이 존재의 장에 제한된 인식으로서가 아니라 의식으로 들어왔다

그 다음 어떻든 무언가 생각으로, 제한된 인식에의 동일시, 믿음으로 변했다

이것에서 우리가 깨어나야 하는 것이다

 

so satsang is a bit like a waking room, not waiting room,

waking room meaning somehow by listening and looking-

yes, it's true, all these things i can see- every thought, my self image, all my different place-

all of that have come, like clouds have passed-

now something feeling like not cloud, but like the sky,

the clouds of thought and feelings, imagination are floating by 

but sky is not floating by

 

그래서 사트상은 좀 깨어나는 방과 같은 것이다, 대기실이 아니다

깨어나는 방이란, 

어떻게든 듣고 바라보는 것으로

그래, 사실이구나, 이 모든 것들을 내가 바라볼 수 있다- 모든 생각, 나의 이미지, 나의 다양한 자리-

이 모든 것이 왔다, 구름이 지나가듯

이제 무언가 구름이 아닌 것을 느끼는 것 같다, 하늘인 것처럼

 

생각과 상상, 느낌의 구룸들은 지나간다

하지만 하늘은 지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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